사람과 시인

십일월을 만지다 / 이면우

파주노을 2019. 10. 31. 23:50

 

십일월을 만지다

이면우

 

 

 

남쪽으로 갈 때 나는 버스의 오른쪽에 앉고

 

싶습니다 내내 햇빛 비치는 곳에서 당신을 쟁각할

 

겁니다 그러면 가지에서 가지로 쉼없이

 

건너다니는 수마트라섬 긴팔원숭이의 기쁨도

 

따라올겁니다 십일월에 남쪽으로 갈 때는 버스의

 

오른쪽에 앉아, 뻘을 서로 발라주며 깔깔대다

 

웅덩이로 풍덩 뛰어들어 물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아이들의 충분을 넌지시 웃게 될

 

겁니다 핫빛 속 맑은 물렁뼈같은 냉기를 따라가며

 

무엇보다 먼저, 자신을 즐기는 일에 취해 끝없이

 

자맥질하는 먼 바다 아기고래의 몸짓을 떠올릴

 

겁니다 솟구치거나 가라앉거나 여전히 바다며

 

고래이듯 한 삶이 그토록 오래 그리워 한 건 바로

 

삶 자체라는 것, 스스로 펼쳐진 손바닥 어디께쯤

 

슬몃 와닿는 그것, 그게 실은 막 물을 가장 높이

 

뿜어 올린 고래를 만진 일임을 알게 해준

 

십일월의 날들을 동그랗게 오므려 간직할 수

 

있도록, 한 번 더 남쪽으로 가도록 허락된다면,

 

당신을 처음 만진 기쁨을 맨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버스의 오른쪽에 앉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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