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시인

통속적 하루 /박소란

파주노을 2019. 10. 20. 19:28

 

통속적 하루 

     

   박소란

  

  

   전화를 걸지 못했다

  

   9층 사무실 창으로 내려다본 바깥 풍경이 탄식하듯 저무는

   이 저녁의 낙막을 나는 그저 방관하기로 한다

  

   눈 주는 곳마다 노을은 무너지고 순하던 잎사귀 화염처럼 치솟아

   죄는 깊어가는데 사랑의 죄 사랑할 수 없는

   한 그루 은행나무

  

   제 바로 곁에 병든 짝을 세워둔 저 맹목한 사내를

   뿌리째 흔든다 한들 우리 계절은 너무나 뻔하고 뻔한 것이어서 결국

   구린 열매 몇알 빈 가슴을 탕진하고 말 뿐

  

   거리는 온통 멀어지는 뒷모습들로 가득해

   누구든 어디든 붙잡고만 싶어

   퇴근을 놓치고 선 하늘의 망연한 얼굴만 들여다볼 때

  

   이대로 잠시 앓기로 한다

   단지 오늘만, 끝으로

   보고 싶다 한마디가 몰고 온 이 하루의 고약한 병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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