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시인

그대의 말뚝 / 김명인

파주노을 2020. 5. 20. 17:04






그대의 말뚝

             - 김명인



그대가 병을 이기지 못하였다. 병한테 손들어버린


그대를 하직하고 돌아오는 십일월 길은


보도마다 빈손으로 허공을 어루만지며 낙엽이


한꺼번에 져 내렸다


나는, 문상에서 이미 젖어 저 길 어디에


오래도록 축축할 그대의 집을 바라보았다, 거리


모퉁이에는 낙엽을 태우는 청소부들 몇 명


지상의 불씨를 그대가 불어서


결코 다시 키울 수 없는 저 모반의 모닥불 가까이


그대의 경작이 없다, 그러니 경자유전의 밭들은


이제 밤 되면 하늘 속으로 옮겨지고 잡초처럼


별들 돋아나서 반짝일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말 메어 둘 일 많아 그 일 중 하날


그대와 내가 지킨다고 하였으나


인적 그친 아파트의 공터를 가로지를 때 나는


내 말뚝에도 이미 메어 둘 말이 없음을, 너무 허전하여


마음속으로만 울리는 말방울 소릴 듣고


가슴의 빈 구유에서 오랫동안 낡아 갈


남은 시절을 생각했다


세상은 이렇게 시들고 마파람 속 홀로 달린다는 것은


갈 곳 아득하여 슬픔의 갈기가 바람을 다해


날린다는 것이냐, 나 혼자는


다 갈 것 같지가 않아 고개 들기가 너무 무거운 날


다시 하늘을 보면 하늘 가득히


빗방울 듣다 말고 듣다 말고 눈발 희끗거리는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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