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 구둔역에서 노을
이쯤에서 제가 당신의 손을 잡았을 겁니다
여름의 불은 아직 소화되지 않았습니다
허술해진 깍지가 싱겁고 밍밍합니다
끊어진 철로
이쪽 끝에서 저쪽 끝을 여러차례 다녀갔습니다
코스모스가 울컥 녹물을 쏟아내는 가을날입니다
은행나무는 고단합니다 허리춤에 매단 숱한 고백들이
무거울까요, 낱낱의
바랜
길이 짧아 다행이어요 기다림의 난간 끝장난 사랑 벼랑이 선명해 돌아서기 만만할 겁니다
기차는 다시 오지 않을 거라고
오목한 폐역에 어둠 한 짐 부려놓고 적적한 산이 달빛을 끌어안습니다. 그믐입니다 푸르게 벼린 조선낫입니다
돌아서 다시 끝을 향해 걸어갑니다 수없이 반복했던 짧은 이별 같습니다
발밑에서 자꾸 자갈돌이 움추려듭니다
단단한 울음을 들고 오래 서성였을 테지요
가장 붉게 녹물이 든 철로의 자갈돌과
가장 깊게 생채기 난 침목의 심장 부근을 끌어안아 주었습니다 귀도 기울여 줍니다 당신이 기차를 타고 오래 전에 출발했다는 소식 마중나온 손이 약간 민망해집니다
괜찮습니다
헐렁해진 손마디가 통점을 잃어버렸을 뿐
발바닥이 너덜거려
여기 잠시 누워 쉬었다 가야겠습니다
저기 아른아른 북쪽 하늘의 별 하나
당신이 타고 가신 그 기차의 점등일까요
불빛 스러질 때까지 옹이같은 자갈돌일랑 잠잠 견디어 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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