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시인

다음에 / 박소란

파주노을 2019. 9. 27. 21:58

 

 

다음에

 

 

 

― 박소란

 

 

 

그러니까 나는

 

다음이라는 말과 연애하였지

 

다음에, 라고 당신이 말할 때 바로 그 다음이

 

나를 먹이고 달랬지 택시를 타고 가다 잠시 만난 세상의 저녁

 

길가 백반집에선 청국장 끓는 냄새가 감노랗게 번져 나와 찬 목구멍을 적시고

 

다음에는 우리 저 집에 들어 함께 밥을 먹자고

 

함께 밥을 먹고 엉금엉금 푸성귀 돋아나는 들길을 걸어 보자고 다음에는 꼭

 

당신이 말할 때 갓 지은 밥에 청국장 듬쑥한 한술 무연히 다가와

 

낮고 낮은 밥상을 차렸지 문 앞에 엉거주춤 선 나를 끌어다 앉혔지

 

당신은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바삐 멀어지는데

 

나는 그 자리 그대로 앉아 밥을 뜨고 국을 푸느라

 

길을 헤매곤 하였지 그럴 때마다 늘 다음이 와서

 

나를 데리고 갔지 당신보다 먼저 다음이

 

기약을 모르는 우리의 다음이

 

자꾸만 당신에게로 나를 데리고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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