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시인

춘천가는 길 / 노을

파주노을 2019. 9. 22. 19:02








춘천 가는 길

          - 노을

 

 

가을이 가장 아름답던 날, 소국처럼 하얀 거품을 물고 어머니 긴 잠에 들어 꿈을 꾸시는가 사진 속 어머니 머리가 하얗게 비워지고 비워진 머릿속에 새 꿈을 퍼 담는가. 동그란 뼈 안에서 뭉클거리며 환하게 수국이 피어나고, 달리아가 곱게 핀 옛집이 지나가고, 새로 닦은 집터 위에 어머니 백합 가득한 새집을 지으신다

 

망치로 땅땅 부수고 싶어 저 집, 저놈의 집구석! 그을음 가득한 어머니의 집. 부러진 문살 안에 누렇게 바랜 몇 권의 책, 아버지의 붓은 아직도 살아있고 긴 잠에 든 엄마 등 뒤로 여전히 책을 읽는 그 눈이 젖어든다. 작아진 아버지 옆에 흐트러진 잣 껍데기, 떨리는 손으로 잠깐잠깐 잣을 까시겠다 그것이 잠시나마 두려움을 재우는지도. 접힌 신문 사이로 웅크렸던 잣알이 우르르 쏟아진다 아버지 울음도 우르르 쏟아져 내린다.

 

그만 일어나! 울을 넘은 칡넝쿨이 툇마루까지 너울대네. 김장도 하고 무청도 말려야지. 뼛속까지 물들이는 저 단풍은 어쩌려고. 기울어지는 서까래를 한 손으로 떠받들던 그 손, 눈꺼풀이 바위처럼 무거운가, 움찔하던 두 눈이 이내 또 잠긴다. 시절도 인연도 그 속에 가둬놓은

 

어머니 잠 깨우러 경춘가도를 달려간다. 앞차가 지나간 자리, 구르는 바퀴의 힘으로 몸을 뒤채며 튀어 오르는 시든 이파리들, 북한강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처럼 파닥인다. 부서지고 흩어지며 다음 생애를 준비하는 풀과 나무, 가여운 내 어머니. 깊디깊은 잠 속에 들어가 벽돌을 집어온다. 정성스레 부수어 링거 속에 넣어드린다. 그을음 가득한 바람벽 허물고 달리아 활짝 핀 새 집을 지으시라 하늘 위에

가장 화사한


'사람과 시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량역의 새 / 문인수  (0) 2019.09.24
내간체 / 안현미  (0) 2019.09.23
비요일의 하루 / 송영희  (0) 2019.09.21
나에게 1.~3 / 노을  (0) 2019.09.20
도화 아래 잠들다 / 김선우  (0) 2019.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