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시인

백색공간 / 안희연

파주노을 2019. 8. 29. 07:10

 

 

 


백색 공간

- 안희연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고 쓰면

 

눈앞에서 바지에 묻은 흙을 털며 일어나는 사람이 있다

 

한참을

 

서 있다 사라지는 그를 보며

 

그리다 만 얼굴이 더 많은 표정을 지녔음을 알게 된다

 

그는 불쑥불쑥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지독한 폭설이었다고

 

털썩 바닥에 쓰러져 온기를 청하다가도

 

다시 진흙투성이로 돌아 와

 

유리창을 부수며 소리친다

 

“왜 당신은 행복한 생각을 할 줄 모릅니까!”

 

절벽이라는 말 속엔 얼마나 많은 손톱자국이 있는지

 

물에 잠긴 계단은 얼마나 더 어두워져야 한다는 뜻인지

 

내가 궁금한 것은 가시권 밖의 안부

 

그는 나를 대신해 극지로 떠나고

 

나는 원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그 다음 장면을 상상한다

 

단 한 권의 책이 갖고 싶어

 

아무 것도 쓰여 있지 않은

 

 

나는 눈 뜨면 끊어질 것 같은 그네를 타고

 

1초에 하나씩

 

새로운 옆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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