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시인

김기림 / 길

파주노을 2009. 8. 6. 23:02

 

       길  |   김기림 





나의 소년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잊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호져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주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애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 준다.






'사람과 시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정임 / 소라의 집  (0) 2009.08.10
배문성 / 나는 불량해서 좋다  (0) 2009.08.06
지연희 / 지팡이 하나  (0) 2009.08.06
장철문 / 똥 누는 시간  (0) 2009.08.06
문태준 / 혀  (0) 2009.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