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시인

배꽃강/ 김명인

파주노을 2020. 6. 23. 17:44

 

 

배꽃江
         - 김명인

 

한 해의 배꽃도 가뭇없이 흘러가는 것이라면

지난 봄 나 그 江가에 잠깐 앉았었네

골짜기 비탈길 늙은 배나무 아래

꽃 맞춰 돗자리 펴고 꽃향기로 화전花煎 부치고

한두 점 꽃잎 띄워 몇 잔 소주도 걸쳤었네

미처 당도하기도 전에 바다를 보아버린 江물처럼

범람하던 배꽃 천지 그 환하던 물살이

꽃 진 뒤에 이어질 꽃의 긴 부재不在 잊게 했었네

배꽃 분분한 그 江가 넘치듯 웃음 출렁거려서

동무 하나둘 따라 서서 목청껏 노랠 불렀네

꽃 지운 자리마다 노래의 씨 오래오래 여물어갔어도

나 한동안 배꽃 江가로 나가보지 못했었네

홍수지듯 그 江 봄이면 또 범람할 테지만

올해의 노래 내년의 물길로 거스를 수 없다는 것

며칠만 흘렀다가 감쪽같이 사라진 江이

비로소 마음속 아득히 물꼬를 트며 흘러가네

저 신기루의 江가에서 나 배꽃 떨어진 뒤 처음으로 

다시 떨리는 배꼽의 잔 잡아보네

이 잔 비워내면 마음도 몸도 바닥 드러낼 줄

안다 해도 나 어느새 주먹보다 굵어진

배꽃의 배꼽 성큼 베어무네

며칠 동안만 화사하던 배꽃 江가에서

나 배꼽 드러내놓은 채 환하게 웃었네, 웃고 있네

 

'사람과 시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항 / 안도현  (0) 2020.10.20
너 / 김규성  (0) 2020.06.26
이별 노래/ 김명인  (0) 2020.06.13
천년의 잠/ 오세영  (0) 2020.06.13
등꽃 / 김명인  (0) 2020.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