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시인

천년의 잠/ 오세영

파주노을 2020. 6. 13. 08:00

 

 

천년의 잠
             - 오세영



강변의 저 수 많은 돌들 중에서

당신이 집어 지금

손 안에 든 돌,

어떤 돌은

禾巖寺 중창 彌陀殿의 셋째 기둥 주춧돌로
놓이기를 바라고,

어떤 돌은

어떤 시인의 서재 한 귀퉁이에 나붓이 앉아

시가 씌어지지 않는 밤, 그의 빈 원고지 칸을 지키기를 바라고,

또 어떤 돌은

어느 순결한 죽음 앞에서 서서 萬代의 義를 그의 붉은

가슴에 새기기를 바라지만

아, 나는 다만 당신이

물수제비 뜨듯 또다시 강가에 나를

팽개치지 않기만을 ……

아무도 깨워주지 않은 천년의 잠은

죽음보다 더 잔인할지니

흙 위에 엎드려 잠들기보다는

급류 속의 일개

징검다리가 되리라

그러므로 님이여, 장난삼아 던질 양이면 차라리
거친 물살에 던지시라.

그리하여 먼 후일 당신이 다시 찾아오시는 날,

나는 즐겨 내 몸을 당신 앞에 비치리니

당신은 주저 말고 내 등을

밟고 건너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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