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시인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 김선우

파주노을 2019. 10. 8. 20:41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 김선우

 

—2011년을 기억함

 

 

그 풍경을 나는 이렇게 읽었다

 

신을 만들 시간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서로를 의지했다

 

가녀린 떨림들이 서로의 요람이 되었다

 

구해야 할 것은 모두 안에 있었다

 

뜨거운 심장을 구근으로 묻은 철골의 크레인

 

세상 모든 종교의 구도행은 아마도

 

맨 끝 회랑에 이르러 우리가 서로의 신이 되는 길

 

 

 

흔들리는 계절들의 성장을 나는 이렇게 읽었다

 

사랑합니다 그 길밖에

 

마른 옥수숫대 끝에 날개를 펴고 앉은 가벼운 한 주검을

 

그대의 손길이 쓰다듬고 간 후에 알았다

 

세상 모든 돈을 끌어 모으면

 

여기 이 잠자리 한 마리 만들어낼 수 있나요?

 

옥수수밭을 지나온 바람이 크레인 위에서 함께 속삭였다

 

돈으로 여기 이 방울토마토 꽃 한 송이 피울 수 있나요?

 

오래 흔들린 풀들의 향기가 지평선을 끌어당기며 그윽해졌다

 

 

 

햇빛의 목소리를 엮어 짠 그물을 하늘로 펼쳐 던지는 그대여

 

밤이 더러워지는 것을 바라본 지 너무나 오래 되었으나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번져온 수많은 눈물방울이

 

그대와 함께 크레인 끝에 앉아서 말라갔다

 

내 목소리는 그대의 손금 끝에 멈추었다

 

햇살의 천둥번개가 치는 그 오후의 음악을 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는 다만 마음을 다해 당신이 되고자 합니다

 

받아줄 바닥이 없는 참혹으로부터 튕겨져 떠오르며

 

별들의 집이 여전히 거기에 있고

 

 

 

온몸에 얼음이 박힌 채 살아온 한 여자의 일생에 대해

 

빈 그릇에 담기는 어혈의 투명한 슬픔에 대해

 

세상을 유지하는 노동하는 몸과 탐욕한 자본의 폭력에 대해

 

마음의 오목하게 들어간 망명지에 대해 골몰하는 시간이다

 

사랑을 잃지 않겠습니다 그 길밖에

 

인생이란 것의 품위를 지켜갈 다른 방도가 없음을 압니다

 

가냘프지만 함께 우는 손들

 

자신의 이익과 상관없는 일을 위해 눈물 흘리는

 

그 손들이 서로의 체온을 엮어 짠 그물을 검은 하늘로 던져 올릴 때

 

하나씩의 그물코,

 

기약 없는 사랑에 의지해 띄워졌던 종이배들이

 

지상이라는 포구로 돌아온다 생생히 울리는 뱃고동

 

그 순간에 나는 고대의 악기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태어난 모든 것은 실은 죽어가는 것이지만

 

우리는 말한다

 

살아가고 있다!

 

이 눈부신 착란의 찬란,

 

이토록 혁명적인 낙관에 대하여

 

사랑합니다 그 길밖에

 

 

 

온갖 정교한 논리를 가졌으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옛 파르티잔들의 도시가 무겁게 가라앉아 가는 동안

 

수 만 개의 그물코를 가진 하나의 그물이 경쾌하게 띄워 올려졌다

 

공중천막처럼 펼쳐진 하나의 그물이

 

무한 하늘 한 녘에서 하나의 그물코가 되는 그 순간

 

별들이 움직였다

 

창문이 조금 더 열리고

 

두근거리는 심장이 뾰족한 흰 싹을 공기 중으로 내밀었다

 

그 순간의 가녀린 입술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나는 들었다 처음과 같이

 

지금 마주본 우리가 서로의 신입니다

 

나의 혁명은 지금 여기서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