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시인

남원 가는 길 / 양애경

파주노을 2019. 7. 31. 11:35
남원 가는 길 / 양애경



임실을 지나 남원 가는 길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면

조그만 동네에도 있을 건 다 있지

여기 살 수 있을 것 같지

북부농협에서 예금을 찾고

농협 상점에서 식료품을 사고

오수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며

당장 오늘부터라도 살 수 있을 것 같지

나는 넝쿨장미인지도 몰라

철사로 엮은 길가 담장에서

이제 막 무더기 무더기 피어나기 시작하는 붉은


한 송이 송이로는 보이지 않고

초록으로 무성한 이파리들 사이에

중간크기 붓으로 몇 군데 문질러 놓은 것 같은

넝쿨장미로 살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 여기서 내려서

논두렁 옆 둑길 하나로 걸어 들어가서 방 한 칸 얻고

편지를 쓰고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고

농협에 계좌를 트고

그리고 농협상점에서 쌀 한 봉지하고 비름나물 한 묶음 사고

그렇게 살아도 되는 것 같아

어디 있는지 모르는 당신

더 찾지 못하게 꽁꽁 숨어서 살고 싶은 마음

허탕을 친 당신 한 번 더 차를 타고

나 사는 곳으로

찾아오게 하고 싶은 마음

지금 나 그런 마음 아닐까 몰라

임실에서 남원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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