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병과 크레인과 할아버지와
박 철
오늘도 너와 나 그리운 마을에 섰다
한때 싱그러운 생기로 가득 찼을
빈 병이 이마를 맞대고 담 밑에 옹기종기
일가를 이루고 있다
가랑비도, 숨어들어온 빈 병 속의 투명한 햇살도
맑고 곱다
목장갑을 낀 할아버지가 보랏빛 바람을 끌고 다가와
빈 병을 들어 가슴에 안고 간다
빈 병 모으는 할아버지는
이렇게 오후의 젖은 햇살을 끌어다가
오늘밤 하루 따뜻하게 주무시겠다
강서구 방화동 골목길을 따라
9호선 전철 공사가 한창이다
힘 좋은 크레인이 마을을 들어올리고 있다
나 크레인 몰고 달리고 싶다
홍안의 손놀림을 따라 세상의 한 모퉁이가
자리를 바꾸어 앉으리라
나 크레인 몰고 너에게 가서
아침 햇살이 오후의 빗줄기를 피해
담장 밑 빈 병 속에 숨어 있다 말하리라
빈 병처럼 터널처럼 또 가슴을 비워내면서
사람들이 숨가쁘게 흙을 나른다
이리저리 H빔이 날아다니는 하늘가
오늘 하루 검게 그을은 무쇠의 손길로
달려가 너의 닫힌 가슴 두드리리라
땅 속 깊이 박힌 몸 뽑아 멀리 달아나리라
나를 버티는 축은 빈 병과
할아버지와 오후의 젖은 햇살과 얼굴 흐린 그대
여기는 모터 소리 요란한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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