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시인

박 철 / 빈 병과 크레인과 할아버지와

파주노을 2009. 7. 31. 21:54

빈 병과 크레인과 할아버지와

 

                                박 철

 

 

오늘도 너와 나 그리운 마을에 섰다

한때 싱그러운 생기로 가득 찼을

빈 병이 이마를 맞대고 담 밑에 옹기종기

일가를 이루고 있다

 

가랑비도, 숨어들어온 빈 병 속의 투명한 햇살도

맑고 곱다

목장갑을 낀 할아버지가 보랏빛 바람을 끌고 다가와

빈 병을 들어 가슴에 안고 간다

빈 병 모으는 할아버지는

이렇게 오후의 젖은 햇살을 끌어다가

오늘밤 하루 따뜻하게 주무시겠다

 

강서구 방화동 골목길을 따라

9호선 전철 공사가 한창이다

힘 좋은 크레인이 마을을 들어올리고 있다

나 크레인 몰고 달리고 싶다

 

홍안의 손놀림을 따라 세상의 한 모퉁이가

자리를 바꾸어 앉으리라

나 크레인 몰고 너에게 가서

아침 햇살이 오후의 빗줄기를 피해

담장 밑 빈 병 속에 숨어 있다 말하리라

 

빈 병처럼 터널처럼 또 가슴을 비워내면서

사람들이 숨가쁘게 흙을 나른다

이리저리 H빔이 날아다니는 하늘가

오늘 하루 검게 그을은 무쇠의 손길로

달려가 너의 닫힌 가슴 두드리리라

땅 속 깊이 박힌 몸 뽑아 멀리 달아나리라

나를 버티는 축은 빈 병과

할아버지와 오후의 젖은 햇살과 얼굴 흐린 그대

 

여기는 모터 소리 요란한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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