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시인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파주노을 2021. 2. 24. 22:28

 

 

앞 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 고재종



그토록 흐르고도 흐를 것이 있어서 강은


우리에게 늘 면면한 희망으로 흐르던가.


삶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듯


굽이굽이 굽이치다 끊기다


다시 온몸을 세차게 뒤틀던 강은 거기


아침 햇살에 샛노란 숭어가 튀어오르게도


했었지. 무언가 다 놓쳐버리고


문득 황황해하듯 홀로 강둑에 선 오늘,


꼭 가뭄 때문만도 아니게 강은 자꾸 야위고


저기 하상을 가득 채운 갈대숲의


갈대잎은 시퍼렇게 치솟아오르며


무어라 무어라고 마구 소리친다. 그러니까


우리 정녕 강길을 따라 거닐며


그 윤기나는 머리칼 치렁치렁 날리던


날들은 기어이, 기어이는 오지 않아서


강물에 뱉은 쓴 약의 시간들은 저기 저렇게


새까만 암죽으로 끓어서 강줄기를 막는


것인가. 우리가 강으로 흐르고


강이 우리에게로 흐르던 그 비밀한 자리에


반짝반짝 부서지던 햇살의 조각들이여,


삶은 강변 미루나무 잎새들의 파닥거림과


저 모래톱에서 씹던 단물 빠진 수수깡 사이의


이제 더는 안 들리는 물새의 노래와도 같더라.


흐르는 강물, 큰물이라도 좀 졌으면


가슴 꽉 막힌 그 무엇을 시원하게


쓸어버리며 흐를 강물이 시방 가르치는 건


소소소 갈대잎 우는 소리 가득한 세월이거니


언뜻 스치는 바람 한자락에도


심금 다잡을 수 없는 다잡을 수 없는 떨림이여!


오늘도 강변에 고추멍석이 널리고


작은 패랭이꽃이 흔들릴 때


그나마 실날 같은 흰줄기를 뚫으며 흐르는


강물도 저렇게 그리움으로 야위었다는 것인가

'사람과 시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화 아래 잠들다 / 김선우  (0) 2021.04.13
바다 광산/ 김명인  (0) 2021.02.26
막차의 시간/ 김소연  (0) 2021.02.16
한계령을 위한 연가/ 문정희  (0) 2021.02.07
홍랑  (0) 2020.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