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시인

최갑수 / 오후만 있던 수요일

파주노을 2013. 4. 29. 21:33

오후만 있던 수요일

 

최갑수

 

 

수요일 오후 내내 바람이 불었다

네 쪽으로 내어놓은 창문에는

세월처럼 빠르게

구름만이 흘러서 가고

이따금씩 행려병자의

먼 눈빛처럼

햇빛이 잠시 창틀에 머물렀다 나는

네가 떠난 후 늘 그러하였듯이

너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일과

더불어

나의 안부를 전하는 일을

긴 긴 낮잠으로 대신했다

구름은 무슨 정처없음으로 닿을 곳도 없이

흘러서 흘러서만 가는가 그리고 햇빛은

무슨 애처로움으로 오후를 서성대다

저녁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는가

잠에서 깨면

창 밖은 어두운 겨울 들판

네가 떠나간 겨울 들판

차가운 적막과 적막 그 깊은 사이에는

내 외로움의

높은 미루나무 한 그루가

쑥 쑥 소리도 없이 자라나고 있었다

[출처] 최갑수 / 오후만 있던 수요일

'사람과 시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송찬호/ 반달곰이 사는 법  (0) 2015.10.29
함허동천에서 오래 서성이다 / 전동균  (0) 2013.05.07
기념식수 / 이문재  (0) 2013.03.04
김기택 / 멸치  (0) 2012.07.20
파블로 네루다의 '시'  (0) 2012.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