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시인

문인수 / 시 세 편

파주노을 2009. 8. 26. 13:41

만금이 절창이다/ 문  인  수

 

 

  물들기 전에 개펄을 빠져나오는 저 사람들 행렬이 느릿하다.물밀며 걸어 들어간 자국따라 무겁게 되밀려 나오는 시간이다. 하루하루

  수장되는 저 길, 그리 길지 않지만

  지상에서 가장 긴 무척추 배밀이 같기도 하다. 등짐이 박아 넣은 것인지,

  뻘이 빨아들이는 것인지 정강이까지 빠지는 침묵, 개펄은 무슨 엄숙한 식

장 같다. 어디서 저런,

  삶이 몸소 긋는 자심한 선을 보랴, 그림 같다, 사정없이 계속

  셔트를 누른다. 여인네들... 여 나문 명 누더기 누더기 다가온다. 흑백

  무성영화처럼 내내 아무런 말, 소리 없다. 최후 처럼 쿵,

  트럭 옆 땅바닥에다 조갯짐 망태를 부린다. 내동댕이치듯 벗어 놓으며

저 할머니, 꺼질듯 첫

  일성을 토한다. "어매 징한거, 참말로 죽는 거시 낫것어야" 참말로, 정색

이다. 말짱

  카메라에 박지 못한 것, 철컥─ 가슴에 와 박히는 것, 뭉툭한 뒤축 같은

것,

  늙은 연명이 뱉은 저 말이 절창이다. 질펀하게 번지는 만금이다.

 

 

 

저 할머니의 슬하/문인수

 

할머니 한 분이 초록 애호박 대여섯 개

를 모아놓고 앉아 있다.

삶이 이제 겨우 요것밖엔 남지 않았다는 듯

최소한 작게, 꼬깃꼬깃 웅크리고 앉아 있다.

귀를 훨씬 지나 삐죽 올라온 지게 같은

두 무릎, 그 슬하에

동글동글 이쁜 것들, 이쁜 것들,

그렇게 쓰다듬어보는 일 말고는 숨쉬는

것조차 짐 아닐까 싶은데

노구를 떠난 거동일랑 전부

잇몸으로 우물거려 대강 삼키는 것 같다.

지나가는 아낙들을 부르는 손짓,

저 허공의 반경 내엔 그러니까 아직도

상처와 기억들이 잘 썩어 기름진 가임의

구덩이가 숨어 있는지

할머니, 손수 가꿨다며 호박잎 묶음도

너풀너풀 흔들어 보인다.

 

- 시집 ‘쉬!’(문학동네) 중에서

 

 

동강의 높은 새 / 문인수

 

 

 

동강 높이 새 한마리 떴다. 저, 마음에 뚫린 구멍, 꼭 그만하다. 산의 뿌리가 다 만져진다. 단 일획 깊이 여러 굽이 새파랗게 일자무식의 백 리 긴 편지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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